우리나라 건축분야에 대한 접근과 인식의 문제는 선진 외국과는 달리 건설 위주로 흘러왔다. 이러한 이유는 일제 강점기 이후 1950년 국난을 거치면서 철저히 파괴된 국가의 재건이 국가의 최우선 당면 과제였고, 자본과 자원이 빈약한 국가적 상황 속에서 국민의 삶을 시급히 해결하여야 하는 시점에서 별다른 선택의 여지없이 물량 공급을 위한 건설 속도가 생존의 유일한 길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여건과 환경은 국가의 경제적 위기를 공급 위주의 건설 정책으로 순간을 모면해가는 전략과 내수 산업의 일시적 회복과 활력을 통한 정치적 돌파구를 위하여 선거는 물론 정권의 정당성 유지 확보와 안정적 국정 운영의 방편과 맞물려 정치 피난처로 이용되어 오기도 했다.
여기에 익숙해진 국가 정책 기조는 무엇보다 빠른 주택 공급과 신도시 건설을 필요로 했다. 이런 관행들은 관련법과 사회 제도 등을 신속한 국가 건설과 주택 공급이라는 명분아래 각종 특혜로 규정되도록 하였으며, 국가 정책을 입안하고 운영하는 조직 내에서도 당연하게 귀결되는 풍조와 정의로 인식을 고착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에서 마련된 정책이 40여 년간 유지되면서 그 성과로서 우리나라는 주택 보급률과 경제적 성장 동력에 있어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외형적으로 국가를 부흥시켜 놓은 국가 표본으로서도 세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성장 위주의 공급 정책들은 선진국 진입 정점의 고비와 고속 성장의 문턱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국내의 각종 특혜와 혜택 속에서 토지를 손쉽게 취득, 건설을 하고 이를 판매해서 간단히 수익을 창출해 내는 만물상식 판매업, 집장사, 땅장사, 하청업체 관리업 형태로 성장해 온 건설 분야가 첨단의 기술력과 노하우가 요구되는 냉엄한 세계 시장의 높은 벽을 넘기에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이는 건설 분야에 있어 국내 모든 관련법, 제도들이 창의력, 기술력 등에 있어 세계적 상위 수준이 아니면 품질 경쟁에서 생존할 수 없도록 철저히 훈련되고 경쟁력을 갖추도록 관리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국내의 각종 법과 제도는 오히려 건설업체들의 편에서 손쉽게 돈벌이가 용이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여 이를 기반으로 삼고 그 힘으로 다시 법, 제도 등을 유리하게 강화해 가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는 가치관의 혼돈마저 일으키게 만들고 있다. 더욱 문제되는 것은 이러한 것들이 견제장치 없이 통용되는 정부 조직과 관행적으로 고착화된 사회 인식과 풍토에 있다. 이는 결국 이 분야에 대한 국가 경쟁력의 취약성으로 국가 성장 장애의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가의 지원이 거의 없이 홀로 경쟁한 다른 산업 분야와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여 세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데 반하여 국가가 40여 년간 국가 최고 주력 산업을 건설에 두고 국내 내수시장의 독점과 모든 법률적, 제도적, 금융지원 등 모든 특혜를 주고 지원하였음에도 건설 분야는 왜 국가 역량에 비하여 세계시장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지 깊이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현재 40여 년간 지속되어온 건설 산업 전반에 대한 경쟁력 강화와 부가가치 산업으로서의 역할과 발전의 계기가 되도록 법, 제도 등이 혁신되어야 한다.
이것은 국가가 건축과 건설에 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이 분야의 국가 경쟁력은 각 전문 분야별 상호 견제와 협력을 통한 균형성과 평형성의 유지(Check & Balance)가 선결 조건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를 위하여 최우선적으로 건축과 건설에 대한 국가 정책 추진 방향과 추구하는 가치부터 명확히 정립되어야 한다.
이제는 과거처럼 공급의 속도나 개발 위주의 정책들 경제성, 효율성 가지고 경쟁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할 수 있다. 국내 내수시장도 이미 주택 보급율이 90% 이상 상회하였고 장기적으로 볼 때 인구는 감소되거나 현 시점에서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선진 외국이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무모할 정도로 건설업체들에게 엄청난 법, 제도와 금융까지 지원해주면서 땅장사, 집장사를 하게 해주는 국가는 없다.
건설은 건설로 승부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의 엄청난 특혜와 혜택 속의 만물상업도 부족하여 업자들이 이제는 건축사까지 고용, 설계겸업을 통하여 돈벌이에 나서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도 재벌 건설업자들이 건축사 자격을 이용 사실상 계열 기업 형태로 설계업까지 하여 돈벌이를 하고 있다. 이는 이 분야의 엄청난 양극화 문제와 신진 작가들의 공정 경쟁 참여 기회박탈, 후진들의 취업 고용 기회와 생활 안정에 대한 사회 문제를 발생 시키고 있다.
건축은 도시를 만들어내고 인간의 삶을 담아가는 그릇이다. 현재와 미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민들 삶의 질에 관한 문화적 역량을 어떻게 키워가야 하느냐의 문제이다. 교통 문제를 해소 한다고 효율성, 경제성 확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청계고가를 왜 철거해야만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과거 경제성, 효율성만을 추구하였던 가치가 허구이었음이 입증된 대표적 사례이다. 차량이 적었던 시절 교통량 증가에 대비 이를 해소한다고 만들었던 고가 차도를 정작 교통량이 수십 배 늘어난 시점에서 엄청난 국민의 혈세를 투입하여 철거하여야하는 교훈을 우리는 깊이 새겨야 한다.
진정한 건설 분야의 효율성과 세계적 경쟁력을 갖게 하는 것은 선진 외국처럼 이 분야와 관련된 모든 법, 제도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건설업자는 오로지 건설에만 매진하게 하는 일이다. 그래야 비로소 국가와 국민, 건축과 도시가 문화적 품격과 수준을 갖추게 된다. 이를 갖추지 못하면 국제경쟁력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며, 이는 결국 국민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건축과 도시, 국가의 브랜드 가치까지 하락시켜 국가의 모든 산업 경쟁력을 후퇴 시킨다.
미개한 건축과 도시 속의 집단들이 만들어 내는 물건을 누가 사겠으며, 누가 찾아오고, 누가 구경이라도 하겠는가! 우리나라가 그동안 많은 신도시를 인위적으로 계획하여 건축물을 만들어 공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민들이 진정으로 가보고 싶고, 살고 싶은 건축 공간과 도시가 있는가! 우리도 가보고 싶은 우리 건축물과 도시가 없는데, 어느 나라 어느 국민이 우리를 찾아오겠는가!
이제는 만들어내는 속도와 효율성, 당장의 경제성보다 더 높고 더 큰 가치 창출을 위하여 모든 국가 정책과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따라서 건축과 이로 구성되는 도시는 삶의 품격을 높이고 철학을 담아 문화적 가치를 증진시켜 가는 핵심적 방향을 찾아 실현시켜 가야 한다.
건축과 도시 문화는 관광 산업분야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독창적 문화, 우리의 존재와 정체성, 그리고 역사, 발굴, 보존, 육성 등과도 연계되어 있다. 건축 요소는 항구적이며 창작과 창의력이 바탕이 되고 근간이 되는 소프트웨어적 성격이다. 이에 반하여 건설은 건축과 도시를 만들기 위한 일시적 과정이고 행위에 불과하다.
과거 우리나라의 국가 상황이 공급 속도를 위한 건설만이 유일한 대안이었음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제 그런 방식은 어디에서도 통용되지 않는다. 과거처럼 눈앞의 이익과 당장의 돈벌이에 집착된 사고를 가진 집단들에 의해 이 문제가 이끌려질 경우 건축 분야의 미래는 물론 청계천고가의 수천, 수십억 배의 엄청난 재앙을 가져다 줄 것으로 단언할 수 있다. 모나리자를 종이값과 색소원료값, 소요 인건비, 수치 원가개념으로 계산하여 가격경쟁력, 경제성, 효율성 운운하는 사고를 가진 집단들에게 무슨 더 이상 할 말이 필요한가!
내 땅에, 내 맘대로, 장사 잘되게, 돈벌이 잘되게, 가장 경제적으로, 효율적으로 만들어지는 건물과 도시 속에서 참다운 인간의 삶과 냄새 그리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찾을 수 있고 희망은 있는 것인가! 그런 건물과 그런 도시 집단 속에 있는 인간들을 우리는 이제 미개인이라 말할 수 있다. 문화의 속성이라는 것이 당장의 눈앞에서는 아무런 문제를 발생케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선진화된 문화를 갈망하며 추구하는 것은 삶에 대한 품격을 향상시키기 위함도 있지만 또 다른 커다란 이유는 어느 순간 문화간 충돌이 발생하면 후진 문화에 속한 자들은 선진 문화 속에 흡수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하고 역사는 선진문화만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건축 전문인들은 이러한 일이 발생될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또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이를 막아내야 하는 책임도 있다. 우리는 모든 국민이 문화인으로 남기를 희망하며 이를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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